하루 종일 아이만 바라보며 지내다 문득 내 모습이 낯설게 느껴진 적 있나요?
육아에 치여 잠시 멈췄던 ‘나’라는 존재를 다시 마주하기 위한 작은 시작, 이 이미지는 바로 그런 마음을 담았습니다. 지친 듯 머그컵을 든 엄마와 블록 놀이를 하는 아이, 고요한 일상 속에서도 ‘나는 누구였을까’를 되뇌는 한순간.
이 글과 이미지가 오늘 당신의 마음에 작은 위로가 되길 바랍니다.
1. 아이만 남고 나는 사라졌다 – 정체성 혼란이라는 낯선 감정
출산 전, 나는 이름 석 자로 불리던 사람이었어요. 친구들에게는 ‘듬직한 언니’, 직장에서는 ‘기획 잘하는 김 대리’, 남편에게는 ‘든든한 여자친구’였죠. 그런데 아이를 낳고 나서는 모든 호칭이 ‘엄마’로 바뀌더라고요. 처음에는 좋았어요. ‘아, 나도 드디어 엄마가 됐구나!’ 그 자체가 감격이었고, 소중한 존재 하나를 책임지는 성스러운 사명감 같은 것도 있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이상한 감정들이 밀려오기 시작했어요. 내 이름은 사라졌고, 나의 욕구나 감정은 모두 뒷전으로 밀려났어요. 하루에 거울 한 번도 못 보는 날도 있었고, 머리를 묶을 힘도 없이 대충 묶고 출근하는 남편을 배웅하며 속으로 중얼거렸죠.
“나는 지금 누구지?”
처음엔 그냥 피곤해서 그런가 보다 했어요. 그런데 이게 반복되다 보니, 그 감정이 쌓이고 굳어져서 마치 내가 ‘사라진 느낌’이 들었어요. 대화를 해도, 밥을 먹어도, 내가 주체가 아니라 ‘아이를 위한 기능’ 같았죠. 뭔가를 느끼고 싶은데 감정이 뭉개지는 느낌. 웃고 있어도 텅 빈 느낌. 이건 단순히 피곤해서가 아니었어요. 정체성의 붕괴였어요.
주변에 물어봤더니 다들 그런다더라고요. “애 키울 땐 다 그래~” “너만 그런 거 아니야~” 그 말이 더 외로웠어요. 공감보단 무시받는 느낌이었죠. 그때부터 저는 제 마음을 들여다보기 시작했어요. ‘나는 왜 이렇게 공허할까? 무엇이 나를 잃게 만든 걸까?’
답은 명확했어요. 모든 선택의 중심이 ‘나’가 아닌 ‘아이’였기 때문이에요. ‘아이에게 좋은 것’, ‘아이에게 맞는 것’, ‘아이에게 필요한 것’만 고민하다 보니 정작 나는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고, 아무 감정도 존중받지 못한 채 하루를 살고 있었던 거죠.
2. 정체성 회복, 거창하지 않아도 괜찮아 – 나를 다시 마주하는 방법
‘다시 나를 찾겠다’고 해서 무조건 책을 읽거나, 자격증을 따거나, 운동을 시작할 필요는 없어요. 물론 그런 게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그보다 먼저 해야 할 건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선부터 바꾸는 것이에요.
예를 들어, “내가 무언가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걸 무시하지 않는 것부터 시작해요. 커피가 마시고 싶을 때 “에이, 애가 있으니까 안돼”라고 넘기지 말고, 애 안고 나가서라도 마셔보는 거예요. 그런 소소한 선택 하나하나가 사실은 내 삶을 내가 다시 살아내는 연습이 되거든요.
하루에 5분이라도 나에게 묻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지금 나는 어떤 기분이지?”, “오늘 나에게 필요한 건 뭘까?”, “내가 좋아하는 건 여전히 뭘까?” 그런 질문들을 진지하게 해보면, 희미해진 감정과 생각들이 다시 또렷해져요. 그게 정체성을 되찾는 시작이에요.
그리고 진짜 중요한 건 ‘나만의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에요. 말은 쉽지만, 진짜 어려운 거 알아요. 그래서 하루에 10분이라도, 아이가 자는 사이에 커피 마시며 글을 쓰거나, 좋아하는 노래를 이어폰으로 듣는 것부터 시작했으면 해요. 그런 시간들이 쌓이면 ‘나는 여전히 존재하는 사람이다’라는 감각이 돌아오거든요.
또 하나, 너무 무리해서 “옛날의 나로 돌아가야 해!” 하고 조급해하지 말아요. 출산 전과 같은 나는 아니지만, ‘지금 이 시기의 나’도 새로운 존재로 충분히 멋지거든요. 아이를 키우면서 더 깊어진 감정, 더 강해진 인내심, 더 넓어진 시야가 생겼잖아요. 그건 이전의 나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더 나은 나로 성장하는 길이에요.
3. 나는 엄마이지만, 엄마로만 살고 싶진 않다 – 육아와 자아의 공존
많은 사람들이 말해요. "애 다 키우고 하면 돼."
근데 저는 묻고 싶어요. “왜 나중이어야 하죠?”
나는 지금도 존재하는데, 왜 항상 나중을 기약해야 하죠?
아이에게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스스로를 뒤로 미루는 건 어쩌면 당연해 보일지 몰라요. 하지만 그렇게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아이는 자라서 친구랑 놀러 가고, 혼자 밥도 먹고, 나를 필요로 하지 않게 돼요. 그때 나는 어떤 모습일까요? ‘아이 엄마’ 말고, 나는 어떤 사람일까요?
그걸 지금부터 고민해야 해요. 나는 엄마이지만, 엄마로만 살고 싶진 않아요. 나는 아직도 책 읽는 걸 좋아하고, 새로운 걸 배우는 걸 좋아하고, 예쁜 카페에 가서 노트북 펼치는 게 즐거운 사람이에요. 그걸 잊고 살았지만, 없어지진 않았더라고요. 그냥 오랫동안 묻어뒀던 거였어요.
그래서 요즘은 조금씩 ‘엄마’ 역할에서 잠시 빠져나와 ‘나’를 챙기는 연습을 하고 있어요. 아이를 남편에게 잠시 맡기고 나가서 산책도 하고, 예전 친구에게 먼저 연락도 해보고, 짧은 글도 써보면서요. 이게 큰 변화는 아니지만, 제 삶에는 정말 큰 파장이 되었어요. 숨통이 트이고, 다시 웃을 수 있게 되니까요.
그리고 놀랍게도, 내가 웃으니 아이도 더 밝아졌어요. 엄마가 행복하면 아이도 편해진다는 말, 이제는 뼈저리게 와닿아요. 엄마가 자신을 사랑하는 모습을 본 아이는, 자연스럽게 자기도 그런 존재라고 믿게 될 거예요.
결론: 나는 다시 나로 살아가기로 했다 – 그리고 그걸 매일 다짐한다
사라졌다고 생각했어요.
아이만 남고, 나는 지워졌다고.
하지만 아니었어요. 나는 그냥 잠시 멈춰 있었던 거예요.
엄마라는 역할은 내가 살아온 인생의 한 챕터이지, 전부가 아니에요. 그리고 우리는 그 챕터를 아름답게 쓰기 위해, ‘나’를 너무 잊지 않아야 해요. 정체성을 회복하는 길은 거창한 게 아니에요. 오늘 내 마음을 한 번 들여다보고, 내가 좋아하는 걸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 그게 바로 시작이에요.
혹시 오늘도, 아이가 울고, 밥을 남기고, 밤에 또 안 자서 지치셨나요? 그래도 괜찮아요. 그 속에서도 나라는 사람은 여전히 존재해요. 우리는 아이를 키우면서도, 동시에 나 자신도 다시 키워나가는 중이에요.
다시 내가 되고 싶다는 마음, 절대 이기적인 게 아니에요.
그건 엄마로서 더 오래, 더 건강하게, 더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한 생존 본능이에요.
오늘은 그냥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해보세요.
“나는 괜찮아. 나는 여전히 나야. 다시, 나로 살아가기로 했어.”
그 다짐이 내일을 조금 더 다르게 만들어줄 거예요.
그리고 언젠가 아이가 묻겠죠.
“엄마는 어떻게 그렇게 멋있어졌어?”
그때, 이렇게 대답해주세요.
“엄마는 너를 키우면서, 엄마 자신도 다시 키웠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