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근무 1년 차. 처음엔 책상 하나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노트북, 커피잔, 메모지, 화분까지 꼭 필요한 것들로 가득하다. 햇살이 비치는 창가 앞, 편한 옷차림으로 일하는 모습은 이제 내 일상이 되었다. 지저분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책상, 하지만 그 안에서 나는 가장 집중한다.
1. 카페 감성은 현실이 되지 않았다 – 진짜 필요한 건 편안함
재택근무가 처음 시작되었을 때, 나는 다짐했다. ‘이번 기회에 감성 가득한 홈카페 분위기로 책상을 꾸며보자!’ 인스타그램에서 본 예쁜 원목 책상, 은은한 조명, 그리고 커다란 모니터 옆에 놓인 아메리카노 한 잔까지. 그러나 현실은 조금 달랐다. 일단 내 방에는 원목 책상을 둘 공간이 없었고, 식탁을 책상 삼아 쓰기 시작하면서 ‘감성’보다 ‘생존’이 더 중요해졌다. 엉덩이는 점점 불편함을 호소했고, 쿠션 하나 얹는다고 해결되진 않았다. 몇 주가 지나자 결국 인체공학 의자 검색을 시작했고, 그렇게 처음으로 ‘실제 나의 몸을 위한 가구’에 돈을 쓰기 시작했다. 눈의 피로가 쌓여가던 시점엔 모니터 받침대를 들였고, 키보드 각도까지 조절하는 손목 패드를 하나하나 사들였다. 결국 내 책상은 카페 느낌과는 거리가 멀어졌지만, 내 몸이 편안한 구조로 서서히 바뀌어갔다. 재택근무를 오래 하면서 깨달은 건, 예쁜 것보다 중요한 건 기능성과 내 몸의 피로도를 줄여주는 구조였다는 것이다. 내 책상은 이제 ‘나를 위한 작업 공간’이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2. 공간을 쓴다는 감각 – 책상 위에 사는 물건들
재택근무를 시작한 이후, 책상 위에 있는 물건들의 종류가 완전히 바뀌었다. 처음에는 노트북, 충전기, 무선 마우스, 그리고 감성을 살리기 위한 캔들 하나 정도가 전부였다. 하지만 일이 길어지고 프로젝트가 복잡해질수록 책상은 점점 ‘업무의 현장’이 되어갔다. 메모지를 붙이고, 포스트잇이 나뭇잎처럼 퍼지고, 하루에 마시는 물병과 커피 텀블러가 나란히 자리 잡는다. 자연스럽게 책상 위에는 카테고리가 생기기 시작했다. ‘업무 존’, ‘생활 존’, ‘간식 존’처럼. 나는 책상 정리함을 사서 USB, 명함, 볼펜 같은 자잘한 것들을 구획지었고, 무선 충전기를 도입하면서 전선 정리에도 나섰다. 마우스패드 위에는 조용히 나를 응원해주는 작은 피규어 하나가 자리잡았고, 일할 때 마시는 차를 위한 전용 받침도 생겼다. 이 변화는 단순한 물건 배치의 차원이 아니라, 내가 공간을 어떻게 인식하고 사용하는지를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책상 위를 정리한다는 건 곧 나의 하루를 정리한다는 의미가 되었고, 하루가 끝난 후 책상 위를 비워내는 행위는 퇴근의 신호가 되었다. 물건은 줄었지만, 기능과 동선은 더 섬세해졌다. 이것이 바로 재택 1년이 만들어낸 책상 위의 진짜 진화다.
3.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공존 – 효율을 위한 작은 루틴들
처음엔 ‘재택근무니까 그냥 컴퓨터 하나면 되겠지’ 싶었다. 하지만 곧 알게 되었다. 디지털 도구만으로는 집중력이 떨어질 수 있고, 일정 관리에 구멍이 생길 수 있다는 걸. 그래서 나의 책상 위에는 어느 순간부터 작은 종이 플래너가 놓이기 시작했다. 업무의 큰 흐름은 구글 캘린더에 입력해두지만, 하루의 작은 할 일들은 여전히 손으로 써야 마음이 놓였다. 그리고 노트는 또 다른 나의 브레인 역할을 했다. 아이디어를 메모하거나 전화 통화 중 메모를 남기는 일은 여전히 펜과 종이의 몫이었다. 반대로 디지털 장비들도 점점 늘어났다. 듀얼 모니터를 연결하고, 웹캠을 따로 구비하고, 줌 회의용 조명도 들였다. 특히, 하루 평균 3~4시간은 줌을 켜고 있었기 때문에 마이크 품질에까지 신경을 쓰게 되었고, 마이크 암까지 장착했다. 종이와 키보드, 손글씨와 음성채팅이 공존하는 내 책상은 어느새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조화롭게 섞인 작은 오피스가 되었다. 내가 집중하고 일에 몰입할 수 있도록 책상이 조용히 나를 서포트하고 있다는 느낌은 생각보다 든든했다. 재택근무는 단순히 집에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업무 루틴을 구축해가는 과정이었다.
결론: 책상이 바뀌니 삶이 달라졌다
재택근무 1년, 책상은 단지 물리적인 가구가 아니라 나의 하루를 설계하는 핵심 공간이 되었다. 그 안에는 나의 선택, 변화, 고민, 그리고 적응이 담겨 있었다. 예쁜 인테리어를 쫓던 초반의 감성은 사라졌지만, 대신 더 단단하고 실용적인 공간이 완성되었다. 책상이 변하니 나의 일하는 방식도,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루틴도 바뀌었다. 전에는 단순히 앉아서 일만 하는 자리였던 그 공간이, 이제는 나를 위한 ‘작업의 리듬’을 만들어주는 플랫폼이 되었다. 그리고 그 작은 변화들이 모여 내 삶 전체에 영향을 주고 있었다. 집 안 어딘가에 나만의 자리를 만들고, 그 자리를 나답게 꾸며가는 일은 생각보다 더 큰 힘을 가지고 있었다. 결국 재택근무라는 변화는 책상 위에 남긴 물건들보다도, 그 물건을 선택하고 배치한 나의 방식 속에 진짜 의미가 있었다. 이 변화는 앞으로의 내 삶에도 분명히 계속 영향을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