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의 결이 담긴 석조 건물들, 정적 속의 깊은 울림을 주는 종소리, 그리고 햇살 아래 펼쳐진 고요한 캠퍼스의 풍경. 옥스포드는 단순한 관광지가 아닌, 시간을 천천히 음미할 수 있는 도시였다. 화려하진 않지만 마음속에 오래 남는 여행을 하고 싶다면, 이곳에서의 하루는 분명 잊지 못할 여정이 된다.
옥스포드의 볼거리 – 지식과 전통이 살아 숨 쉬는 도시, 역사의 건축물 속을 거닐다
처음 옥스포드에 발을 내디뎠을 때, 도시 전체가 거대한 학교처럼 느껴졌다. 단순히 건물들이 오래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하나의 건축물에 쌓인 세월의 무게와 숨결이 분명하게 전해졌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옥스포드 대학교의 상징과도 같은 라드클리프 카메라(Radcliffe Camera)였다. 이 원형 석조 건물은 건축적으로도 아름답지만, 실제로는 도서관으로 사용되고 있어서 지식의 중심에 있다는 실감이 절로 났다. 주변을 걸으면 보들리안 도서관(Bodleian Library)의 고풍스러운 외관과 이어지는데, 이곳은 영국에서 두 번째로 큰 도서관이며, 해리포터 시리즈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투어를 예약하면 내부의 15세기 서가와 듀크 험프리 도서관까지 들어갈 수 있는데, 마치 중세의 서기관이 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 외에도 크라이스트 처치(Christ Church)는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명소다. 해리포터의 대식당으로 알려진 이곳의 그레이트 홀은 웅장하고 장엄하며, 고딕 양식의 채플과 정원, 마굿간까지 둘러보는 데만도 꽤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그 시간 동안 나는 계속해서 역사 속을 걷고 있다는 감정을 지울 수 없었다. 그 외에도 더 셰든 극장(Sheldonian Theatre)은 17세기 초에 지어진 옥스퍼드 대학교의 공식 의식용 공연장으로, 크리스토퍼 렌 경이 설계한 아름다운 돔 천장이 인상적이었다. 이곳에서는 졸업식이나 음악 공연도 열리는데, 전망대에 오르면 옥스포드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만약 날씨가 맑다면 꼭 올라가보길 추천하고 싶다. 또 하나 놓칠 수 없는 곳은 자연사 박물관(Oxford University Museum of Natural History)과 피트 리버스 박물관(Pitt Rivers Museum)이다. 전자는 공룡 뼈와 광물, 동물 표본 등이 전시되어 있어 어린이부터 성인까지 흥미롭게 관람할 수 있고, 후자는 세계 각국의 인류학 유물을 다채롭게 전시하고 있어서 박물관 자체가 하나의 미로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타운의 가장 중심적인 거리인 하이 스트리트(High Street)는 역사적인 건물과 상점이 어우러져 있어 걷기만 해도 즐겁고,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마켓 스트리트, 카버리 마켓(Covered Market) 같은 오래된 재래시장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특히 이 시장은 1774년부터 운영되었고, 여전히 수공예품과 먹거리가 공존하는 지역 주민들의 삶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모든 장소들이 도시의 중심에서 걸어서 10~15분 거리 내에 분포되어 있어, 자동차 없이도 천천히 도보로 여유롭게 감상할 수 있는 점이 옥스포드의 큰 매력 중 하나였다.
옥스포드의 먹거리 – 클래식한 영국식과 현대적인 브런치, 전통과 트렌드가 공존하는 미식 공간
옥스포드는 학문의 도시지만, 동시에 의외로 먹을거리가 풍성하고 개성 넘치는 곳이기도 하다. 전통적인 영국식 식당과 세계 각국의 음식, 그리고 아기자기한 베이커리와 브런치 카페들이 다양하게 어우러져 있어 하루 세 끼를 모두 다른 스타일로 즐길 수 있다. 먼저 아침은 전통적인 ‘풀 잉글리시 브렉퍼스트(Full English Breakfast)’로 시작하면 좋다. 카페 라라(Cafe Loco)나 그랜드 카페(The Grand Cafe) 같은 곳은 정통 스타일의 아침 식사를 제공하는데, 베이컨, 소시지, 구운 토마토, 스크램블 에그, 해시 브라운, 토스트에 블랙푸딩까지 가득 담긴 접시를 마주하면 하루를 든든하게 시작할 수 있다. 점심은 마켓 스트리트 근처의 ‘카버리 마켓(Covered Market)’ 안에서 해결해보는 것을 추천하는데, 이곳은 현지 학생들과 주민들이 자주 찾는 공간으로, 간단한 샌드위치부터 치즈, 수제 아이스크림, 핸드메이드 파이 등까지 매우 다양하다. 나는 이곳의 ‘Sasi’s Thai’에서 태국식 볶음국수를 먹었는데, 놀랍도록 정통적이고 맛있었다. 저녁에는 조금 분위기를 바꿔 클래식한 펍이나 와인바에 들러보길 권한다. ‘The Turf Tavern’은 13세기부터 운영되던 오래된 펍으로, 좁은 골목 안에 숨어 있어 처음엔 찾기 어렵지만 그만큼 현지인들의 사랑을 받는 곳이다. 영국식 스테이크 파이, 피시앤칩스, 스코티시 에일 등을 맛보며 벽돌 담장 아래서 보내는 저녁은 정말 옥스포드스러웠다. ‘The Eagle and Child’는 톨킨과 C.S. 루이스 등 잉클링스 그룹이 모이던 유명한 장소이자 문학 애호가들에게 성지 같은 공간이기도 한데, 여기서의 식사는 단순한 식사를 넘어 하나의 경험처럼 느껴졌다. 디저트나 간식으로는 ‘G&D’s 아이스크림’이 유명하다. 지역 생산 우유를 사용한 홈메이드 아이스크림으로, 특별한 날씨가 아니어도 언제나 줄이 길다. 또, 옥스포드의 카페 문화도 굉장히 발전되어 있어, 바리스타가 직접 내려주는 핸드드립 커피나 플랫 화이트를 느긋하게 즐길 수 있다. 카페 루즈(Cafe Rouge)나 Vaults & Garden 같은 곳은 건물 자체도 고풍스러워 커피를 마시며 역사를 느낄 수 있다. 먹거리를 따라 도시를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옥스포드에서의 하루는 알차게 채워지고, 지적이고 고풍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맛보는 음식들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문화 체험으로 느껴졌다.
옥스포드 여행 꿀팁 – 교통, 입장료, 예약, 날씨, 결제까지 완벽하게 챙기기
옥스포드 여행을 계획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교통편이다. 런던에서 옥스포드까지는 패딩턴 역에서 출발하는 기차를 타면 평균 소요 시간은 약 55분에서 65분 정도이며, 기차는 30분 간격으로 자주 운행된다. 편도 요금은 평균 25파운드에서 35파운드 사이지만, 출발일 기준 15일에서 20일 전에 미리 예매하면 10파운드에서 15파운드 정도의 특가표도 구할 수 있다. Trainline이나 National Rail 앱을 활용하면 다양한 시간대와 가격을 비교해볼 수 있어 매우 편리하다. 옥스포드 역에 도착하면 시내 중심까지는 도보로 10분에서 15분 정도 걸리며, 주요 관광지 대부분이 도보권에 모여 있어 따로 교통비를 들일 필요가 없다. 다만 외곽 지역인 카울리 로드나 서머타운까지 이동할 경우에는 시내버스를 이용해야 하는데, Stagecoach와 Oxford Bus Company에서 운영하는 일일 패스를 구매하면 4파운드 50펜스 정도로 하루 동안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옥스포드는 자전거 도시로도 유명하기 때문에 시내 곳곳에 위치한 대여소에서 1일 기준 약 15파운드 전후로 자전거를 빌릴 수 있으며, 도로가 자전거 친화적으로 정비되어 있어 초보자도 부담 없이 이용할 수 있다. 대학교 건물들은 각 칼리지마다 운영이 다르기 때문에, 방문 전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운영 시간과 입장 가능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크라이스트 처치는 성당과 다이닝홀을 보기 위해서는 입장료를 별도로 내야 하며, 성인 기준 약 18파운드가 소요된다. 보들리언 도서관은 가이드 투어가 있어야 내부 입장이 가능하고, 투어는 보통 하루 3회 진행되며 정원제이므로 최소 7일 전에는 예약하는 것이 좋다. 일부 칼리지는 무료로 개방되기도 하지만, 특정 시간대에만 가능하거나 휴관일이 있으므로 미리 확인하는 것이 좋다. 옥스포드의 날씨는 전형적인 영국 날씨처럼 하루에도 여러 번 바뀌는 경우가 많아, 갑작스러운 소나기를 대비해 방수 재킷이나 작은 접이식 우산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특히 10월에서 4월 사이에는 바람이 강하고 추운 날이 많기 때문에, 방풍 기능이 있는 아우터나 후드가 달린 재킷이 유용하다. 여름철인 6월에서 8월이라도 기온이 10도 후반에서 20도 초반 사이로 서늘한 날이 많아 얇은 겉옷을 꼭 챙기는 것을 추천한다. 결제 수단은 거의 모든 상점과 식당에서 카드 결제가 가능하며, 비접촉식 카드나 스마트폰 결제(애플페이, 구글페이 등)도 일상적으로 사용된다. 현금은 굳이 많이 준비할 필요는 없지만, 재래시장이나 소규모 마켓에서는 여전히 현금만 받는 곳이 일부 있으므로 10파운드에서 20파운드 정도는 비상용으로 지갑에 넣어두면 좋다. 마지막으로, 숙박을 계획 중이라면 UniversityRooms라는 사이트를 활용하면 실제 옥스포드 대학교의 기숙사 방을 단기로 예약할 수 있다. 특히 여름방학 기간에는 많은 칼리지가 객실을 개방하며, 1박 기준 60파운드에서 90파운드 정도로 대학 도시 특유의 정취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 된다. 이처럼 교통부터 입장료, 날씨, 결제까지 사전에 준비하고 확인해두면 옥스포드에서 훨씬 여유롭고 깊이 있는 여행을 할 수 있다.
옥스포드 여행 결론 – 고요한 지식의 도시에서 얻은 진짜 쉼표 하나
옥스포드에서의 시간은 나에게 ‘여행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 고요한 순간들이었다.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땐, 유명한 대학교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조금은 딱딱하고 거리감 있는 도시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하루 이틀 걸어보니, 이곳은 생각보다 훨씬 더 사람 냄새가 나는 도시였다. 12세기부터 이어진 건축물들 사이로 학생들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고, 도서관 앞에서 책을 들고 햇살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삶의 한 장면 같았다. 관광지에서 체크리스트를 채우듯 빠르게 움직이기보다는, 옥스포드에서는 그저 천천히 걷는 것만으로도 풍경이 되고 기억이 되었다. 정해진 길 없이 돌아다니다가 마주친 무명의 서점, 아무 계획 없이 들어간 칼리지의 정원, 문득 마주한 뮤지엄의 조용한 전시실 하나하나가 오히려 더 깊이 각인되었다. 햇살 좋은 오후의 라드클리프 카메라 앞 벤치에 앉아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간은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다. 관광 명소의 화려함보다는, 그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리듬과 시간이 주는 여유로움이 이 도시의 진짜 매력이라고 느꼈다. 특히 저녁이 되어 종탑에서 울려 퍼지는 종소리는 도시 전체를 감싸는 음악 같았고, 그 순간 나는 이 도시에 잠시나마 어울리는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옥스포드는 나에게 어떤 ‘지식의 도시’라는 상징보다도, ‘쉼표를 찍을 수 있는 도시’라는 의미로 남았다. 빠르게 지나가는 도시들과는 다르게, 이곳은 일부러 느려지고 싶어지는 공간이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지금도 때때로 옥스포드의 거리와 종소리가 생각날 정도로, 조용하지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여행이란 결국, 얼마나 많은 곳을 봤느냐보다 얼마나 진심으로 머물렀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고, 옥스포드는 그런 여행의 본질을 알려준 도시였다. 언젠가 다시 간다면, 또 다른 골목에서 또 다른 쉼표 하나를 만나고 싶다. 그만큼, 다시 찾고 싶은 곳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