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문명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터키의 에페소스. 찬란한 셀수스 도서관과 대극장, 그리고 골목마다 묻어나는 수천 년의 역사 속을 걷다 보면 마치 시간 여행자가 된 듯한 감동이 밀려온다. 정교한 유적의 아름다움은 물론, 셀축 마을의 따뜻한 사람들과 전통 터키 요리의 풍미까지 더해져 이 여행은 단순한 관람이 아닌 마음 깊이 각인되는 경험이 된다. 빠르게 흘러가는 일상 속, 잠시 멈춰 서서 과거를 마주하고 싶은 이들에게 에페소스는 가장 진심 어린 답장이 되어줄 것이다.
볼거리: 고대의 시간이 멈춰 선 도시, 에페소스를 걷다
터키 이즈미르 인근에 자리한 에페소스는 그야말로 '시간이 멈춘 도시'라는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리는 곳이었다. 처음 도착했을 때는 단순히 돌기둥과 유적지들이 즐비한 곳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발을 들이고 나니 이곳은 단순한 유적의 집합이 아니라 수천 년 전의 생생한 도시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살아 있는 박물관 같았다. 에페소스는 기원전 10세기에 처음 세워졌으며, 고대 그리스와 로마 제국 시대를 거쳐 동로마 제국의 한 중심지로 번성했던 도시다. 그만큼 도시 전체가 거대한 유적지이자 탐험 공간인데,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바로 셀수스 도서관이다. 정교한 기둥 장식과 대칭미가 완벽하게 살아 있는 그 건축물 앞에 서면, 마치 과거 로마 시민들 틈에 섞여 책을 빌리러 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셀수스 도서관 앞 광장에서는 고양이들이 여유롭게 햇볕을 즐기고 있었고, 사람들은 조용히 앉아 과거의 시간을 상상하며 벤치에 기대 있었다. 이곳을 지나 북쪽으로 올라가면 에페소스 대극장이 나온다. 약 2만 5천 명까지 수용 가능했던 이 고대 극장은 여전히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고, 무대에 서보면 놀라운 음향 효과를 직접 체험할 수 있다. 누군가 무대 중앙에서 속삭이듯 말해도 맨 위 계단에서도 그 울림이 느껴질 정도로 정교하게 설계된 구조는 현대 기술도 놀라게 할 만큼 정밀했다. 그 외에도 하드리아누스 신전, 로마식 공중화장실, 모자이크가 잘 보존된 테라스 하우스 등 볼거리는 끝없이 이어진다. 특히 테라스 하우스는 별도 입장권이 필요하지만 내부의 세밀한 벽화와 바닥 장식, 당시 부유층의 생활상을 생생히 보여주는 구조 덕분에 꼭 방문할 가치가 있었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곳은 바로 아르테미스 신전 유적지였다. 비록 지금은 대부분 무너져버린 상태이지만, 고대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히던 이 신전이 과거 어떤 위용을 자랑했을지를 상상하며 서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숙연해졌다. 여기에 더해 유적을 따라 걷는 길 곳곳에서 올리브 나무와 라벤더 향이 스쳐 지나가고, 유적 사이를 비집고 핀 야생화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은 마치 고대 도시가 자연과 함께 숨 쉬고 있는 듯한 기분을 들게 했다. 에페소스는 하루 만에 둘러보기에는 아쉬울 만큼 규모가 방대하며, 걷는 내내 뜨거운 햇살 아래 과거의 시간과 조우하는 듯한 신비로움이 여행자의 발걸음을 멈추게 만든다. 고대 도시를 걷고, 벤치에 앉아 과거의 사람들과 같은 풍경을 바라보는 경험은 다른 어떤 관광지에서도 느끼기 어려운 특별함이었다.
먹거리: 고대 도시에서 맛보는 풍요로운 터키식 한 끼
에페소스를 여행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 중 하나는 바로 유적지 주변 작은 마을들에서의 식사 경험이었다. 일반적인 관광지 음식점들과는 달리 이 지역은 여전히 전통적인 삶의 방식이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어서, 식당에서 나오는 음식 하나하나가 정형화된 요리가 아니라 마치 할머니가 손수 차려준 시골 밥상처럼 정겹고 따뜻했다. 에페소스 유적지를 둘러본 후,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들르게 되는 셀축 마을의 로컬 식당에서 처음 맛본 건 구운 가지 요리였다. 터키식 가지구이는 올리브 오일과 향신료로 깊은 풍미를 더해 겉은 살짝 바삭하고 속은 부드럽게 녹아들었는데, 고대 도시의 먼지 쌓인 여정을 마친 몸에 편안한 위로를 주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어서 나온 메인 요리는 ‘케밥’이었는데, 이 지역에서는 숯불에 구운 ‘쉬시 케밥(Şiş Kebab)’이 특히 유명했다. 큼직하게 썬 양고기를 양파, 파프리카와 함께 구워낸 이 요리는 고기 자체의 육즙이 풍부하면서도 전혀 비리지 않고 담백해서 입맛을 사로잡았다. 곁들여 나온 따뜻한 피데 빵은 얇고 쫄깃해 케밥 소스와 함께 먹기에 딱 좋았고, 살짝 매콤한 고추 피클은 입맛을 돋우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여기에 터키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전통 음료인 ‘아이란’이 함께 나오는데, 요거트를 물과 소금으로 희석해 만든 이 음료는 케밥의 기름기를 잡아주며 상큼한 마무리를 도와줬다. 또 다른 날에는 유적지 남단에 위치한 작은 가족 식당에서 현지 주민 추천으로 ‘멘멘(Menemen)’이라는 터키식 스크램블 에그 요리를 맛봤다. 토마토, 피망, 양파를 볶아낸 후 달걀을 부어 부드럽게 익힌 이 요리는 아침 식사로 인기가 많다는데, 막 구워낸 빵에 얹어 먹으면 재료 하나하나의 맛이 살아 있어 매우 만족스러웠다. 디저트로는 터키 전통 과자인 ‘바클라바’를 주문했는데, 꿀과 피스타치오가 층층이 쌓인 그 달콤함은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커피 대신 ‘터키 차’인 차이(çay)를 함께 곁들이면 입 안 가득 퍼지는 향긋함과 달콤함이 여행의 피로를 싹 잊게 해주었다. 에페소스 근방에서는 대부분의 식당이 가족 단위로 운영되다 보니, 단골처럼 친절하게 맞아주는 분위기 속에서 현지인의 삶을 가까이 느낄 수 있었고, 그런 정서가 음식 맛까지 더 진하게 만들어주는 느낌이었다. 요리 하나하나에 담긴 정성과 향신료의 조화, 그리고 식사를 통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대화들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이 도시와 더 깊이 연결되는 방식 같았다. 에페소스에서의 식사는 유적지만큼이나 인상 깊고 오래 기억에 남을 여행의 중요한 일부였다.
꿀팁: 고대 도시 에페소스를 알차게 즐기기 위한 실전 정보
에페소스를 처음 방문한다면 유적지의 규모가 예상보다 훨씬 크다는 점을 반드시 염두에 두는 것이 좋다. 보통 많은 사람들이 1~2시간 정도면 끝날 것이라 생각하지만 실제로 셀수스 도서관, 대극장, 테라스 하우스, 하드리아누스 신전 등 주요 지점들을 여유 있게 둘러보려면 최소 3시간에서 4시간은 잡아야 하며, 사진 촬영이나 중간 휴식까지 포함하면 반나절 정도 소요된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따라서 오전 이른 시간대나 오후 늦은 시간대에 방문하는 것이 체력적으로나 사진 촬영 측면에서 훨씬 유리하다. 특히 여름철에는 기온이 35도 이상까지 오르기 때문에 5월 중순에서 6월 초, 또는 9월 중순에서 10월 초가 가장 쾌적한 시기로 추천된다. 입장권은 현장에서 구입할 수 있지만, 줄이 길게 늘어설 수 있으므로 온라인 사전 예약을 통해 모바일 티켓으로 입장하는 것이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테라스 하우스는 에페소스 메인 입장권 외에 별도의 입장료가 필요하며, 8유로에서 10유로 수준이므로 예산에 포함시키는 것이 좋다. 현장 내 화장실과 매점은 입구 쪽에만 있으니 입장 전 충분한 준비가 필요하고, 마실 물은 미리 준비해 가는 것이 좋다. 또 유적지 내에서는 경사가 있는 길도 많고 바닥이 울퉁불퉁한 돌길이기 때문에 샌들이나 슬리퍼보다는 밑창이 단단한 운동화나 트레킹화가 훨씬 안전하고 편하다. 셀축 시내에서 에페소스까지는 택시나 미니버스(돌무쉬)를 이용할 수 있는데, 택시는 편도로 약 5유로에서 7유로 정도이며, 미니버스는 1유로 내외로 저렴한 편이다. 에페소스를 관람한 후에는 가까운 아르테미스 신전 유적지와 셀축 박물관도 함께 들러보는 것을 추천한다. 특히 박물관은 에페소스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어 현장에서는 보기 어려운 세부 조각상이나 생활 도구들을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어 훌륭한 연계 코스가 된다. 환전은 셀축 시내의 은행이나 환전소를 이용하면 되며, 터키 리라를 기본으로 하지만 일부 업장에서는 유로도 받기 때문에 소액의 유로 지폐를 함께 준비하면 요긴하다. 식사나 기념품 구입 시에는 현금 결제를 선호하는 곳이 많지만, 일부 레스토랑이나 상점은 카드 결제도 가능하니 해외 결제가 가능한 카드 한 장쯤은 챙겨두는 것이 좋다. 마지막으로, 해가 지기 전후의 시간에는 유적지 인근에서 산책하며 석양을 감상하는 것이 무척 아름답고 감동적이기 때문에 일정을 여유롭게 잡고 천천히 걸으며 고대 도시의 여운을 오래 누려보길 바란다.
결론: 시간이 멈춘 고대 도시에서 다시 나를 만나다
에페소스를 다녀온 이후로도 나는 가끔 사진첩을 넘기거나, 그곳에서 찍어온 셀수스 도서관의 전경을 휴대폰 배경화면으로 설정해놓고는 그날의 감정을 떠올리곤 한다. 단순히 오래된 유적 몇 개를 둘러본 여행이 아니라, 마치 고대의 시간 속을 직접 걸으며 과거 사람들의 숨결과 시선을 함께 공유한 듯한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셀수스 도서관 앞에서 올려다본 그 정교한 기둥과 석조물, 대극장 위에 올라서 바라본 도시 전경, 햇살에 부서지는 고대 돌길 사이사이로 피어 있던 작은 들꽃들, 그리고 나를 천천히 둘러보며 고요하게 스며드는 라벤더 향까지—이 모든 것이 머릿속에 또렷하게 남아 있다. 특히 이곳의 매력은 유적 자체의 위엄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셀축 마을에서 만난 터키인들의 따뜻한 인사와 식당 아주머니의 손맛이 느껴지는 케밥, 아이란 한 잔으로 더위를 식히며 나눈 대화까지도 여행의 중요한 기억으로 자리 잡았다. 나는 여행을 갈 때마다 그 도시의 표정을 찾으려고 노력하는데, 에페소스는 그 표정이 '품위 있는 고요함'이었다. 너무도 많은 시간을 품은 도시, 수천 년을 지나면서도 흔들리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킨 도시만이 줄 수 있는 침착한 아름다움과 감동이 있었다. 에페소스를 여행지로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주저 없이 말하고 싶다. '이곳은 그냥 유적이 아니야. 너의 생각이 멈추고 마음이 맑아지는 곳이야.' 라고. 차분하게 걷고, 천천히 보고, 가끔은 눈을 감고 바람 소리를 듣기만 해도 좋다. 빠르게 소비되는 관광지가 아닌, 마음을 천천히 열고 오래도록 곱씹을 수 있는 진짜 여행이 필요할 때 에페소스만큼 좋은 선택지는 드물다. 너무 유명하거나 붐비는 대도시 대신 이렇게 깊이 있는 고대 도시에서의 여행은 오히려 자신과의 대화가 가능하게 해주는 기회를 준다. 에페소스는 화려하진 않지만 묵직하게 다가오는 감동이 있다. 천천히 걸어야만 보이는 돌 하나, 기둥 하나, 그리고 그 안에 스며든 수많은 시간의 이야기들. 그 모든 것을 차곡차곡 마음에 담고 나면, 이 도시는 당신에게 단순한 ‘관광지’가 아닌 ‘기억 속의 친구’로 남게 될 것이다. 언젠가 다시 에페소스에 간다면, 같은 길을 또 걷고 싶을 것이다. 다른 누구의 발자국이 아닌, 지난날의 내 발걸음과 다시 마주치기 위해서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