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남동부의 문화 수도 멜버른. 예술과 커피, 자연과 도시가 어우러진 이곳에서 느린 속도의 여행을 즐겼다. 골목마다 다른 감성을 품은 거리, 햇살 가득한 카페, 여유로운 사람들까지. 트램을 따라 펼쳐지는 일상의 예술과 삶의 여유를 깊이 느낀 멜버른 여행기를 정성스럽게 담아봤다. 나만 알고 싶은 도시, 하지만 꼭 함께 공유하고 싶은 그곳 멜버른으로 지금 떠나보자.
볼거리: 예술과 자연이 공존하는 도시, 멜버른의 마법 같은 하루
처음 멜버른에 도착했을 때, 도시 전체가 살아 움직이는 하나의 거대한 예술작품처럼 느껴졌다. 고풍스러운 유럽풍 건축물과 최첨단 현대 건물이 조화를 이루며 이어지는 거리 풍경은 걷는 것만으로도 감탄을 자아냈고, 이곳이 왜 ‘호주 속의 유럽’이라 불리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멜버른 시내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바로 플린더스 스트리트 역이었다. 노란색 외관과 시계탑이 인상적인 이곳은 단순한 기차역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흩어지는 이곳은 도시의 심장처럼 느껴졌고, 역 앞 횡단보도를 건너는 순간 나도 이 도시의 일부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역에서 가까운 **페더레이션 스퀘어(Federation Square)**는 멜버른의 문화적 중심지로, 곳곳에서 거리 공연과 전시가 진행되고 있었고, 하루 종일 사람들로 북적이는 모습이 에너지 넘치는 도시 분위기를 고스란히 보여줬다. 또 바로 앞에 흐르는 야라강(Yarra River)을 따라 걷다 보면 강변을 따라 멋진 카페들과 산책로가 펼쳐져 있어, 그냥 걷는 것만으로도 여행의 피로가 싹 풀리는 기분이었다. 멜버른을 제대로 보려면 트램을 타고 시내를 한 바퀴 도는 것도 추천하고 싶은 경험이다. 특히 무료로 운영되는 시티 서클 트램(City Circle Tram)은 레트로한 디자인이 인상적이고, 주요 명소들을 편하게 연결해줘서 멜버른 초보 여행자에게 최고의 교통수단이었다. 다음으로 내가 정말 감동했던 장소는 그레이트 오션 로드(Great Ocean Road) 드라이브였다. 멜버른에서 당일 혹은 1박 2일 코스로 다녀올 수 있는데, 끝없이 이어지는 해안도로를 달리며 보게 되는 자연의 장엄함은 정말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을 만큼 경이로웠다. 특히 ‘12사도 바위’는 눈앞에 펼쳐진 장대한 절경에 숨이 멎을 정도였고, 그곳에서 본 석양은 평생 기억에 남을 장면 중 하나다. 멜버른 도심에서도 놓치지 말아야 할 명소는 바로 퀸빅토리아 마켓이다. 이곳은 단순한 재래시장이 아니라 멜버른 사람들의 일상과 여행자의 설렘이 교차하는 공간이다. 아침부터 신선한 과일, 치즈, 해산물은 물론 기념품과 간단한 길거리 음식까지 모두 경험할 수 있어, 하루쯤은 일부러 아침 일찍 들러보는 걸 추천한다. 예술을 좋아하는 나에게 멜버른의 **호시어 레인(Hosier Lane)**은 또 하나의 감동 포인트였다. 골목 전체가 수많은 그래피티 아트로 뒤덮여 있는데, 그 생생하고 파격적인 색감의 예술들 사이를 걷다 보면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게 빠져들게 된다. 심지어 매번 방문할 때마다 작품이 바뀌기 때문에, 마치 살아 있는 캔버스를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마지막으로 추천하고 싶은 멜버른의 볼거리는 바로 세인트 킬다 비치다. 도심에서 트램으로 20분 남짓이면 닿을 수 있는 이 해변은 일몰 풍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하고, 특히 해질 무렵이면 작은 펭귄들이 방파제 틈에서 나오는 장면을 직접 볼 수 있다. 고요한 파도 소리와 함께 붉게 물든 하늘 아래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면, 멜버른이라는 도시에 또 한 번 반하게 된다. 도시 속에서 자연을 만끽하고, 자연 속에서도 예술을 경험할 수 있는 곳. 이 모든 것이 멜버른이라는 한 도시 안에 녹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여행은 특별했다.
먹거리: 멜버른에서의 한 끼는 매번 작은 축제였다
멜버른에 도착한 첫날부터 나는 이 도시가 음식의 천국이라는 사실을 단박에 느낄 수 있었다.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어우러져 살아가는 도시답게 멜버른은 세계 각국의 요리를 거리 한 블록마다 만날 수 있었고, 그 품질과 정성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식사가 아닌 ‘문화 체험’에 가까웠다. 아침은 반드시 카페에서 브런치로 시작했는데, 멜버른은 그야말로 브런치의 성지였다. 특히 피츠로이(Fitzroy)나 콜링우드(Collingwood) 같은 동네의 힙한 카페들은 그냥 커피 한 잔만 마시고 나올 수 없게 만들었다. 내가 가장 인상 깊게 기억하는 건 '프라우드 메리(Proud Mary)'라는 카페였는데, 에그 베네딕트와 함께 나온 스페셜티 커피는 지금도 혀끝에 그 부드러운 질감이 남아 있을 정도였다. 로컬들은 정말 커피에 진심이었고, 바리스타의 숙련도나 커피의 맛, 분위기까지 삼박자를 고루 갖춘 카페가 멜버른에는 무수히 많았다. 멜버른에서 점심이나 저녁을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그냥 발길 닿는 대로 골목으로 들어가도 언제나 맛있는 무언가가 기다리고 있었다. 특히 시티 안에 있는 차이나타운은 생각보다 훨씬 깊은 맛을 담고 있어서 놀랐다. 싱가포르 스타일의 락사, 홍콩식 딤섬, 말레이시아 사테 등 아시아의 다양한 요리를 저렴하게 즐길 수 있었고, 하나같이 현지 못지않은 퀄리티였다. 한국 음식이 그리운 날엔 코리아타운 근처에서 비빔밥이나 김치찌개를 먹을 수도 있었고, 양식이 먹고 싶은 날엔 리틀 이탈리아(Lygon Street)에서 파스타와 피자를 즐길 수 있었다. 멜버른은 진짜 ‘입맛에 따라 도시가 바뀌는’ 느낌이었다. 해산물도 빼놓을 수 없는데, 사우스 멜버른 마켓에서 맛본 굴과 새우, 그리고 즉석에서 구워주는 버터갈릭랍스터는 지금껏 먹은 해산물 중 손에 꼽을 만큼 신선하고 감칠맛이 뛰어났다. 시장 한쪽에서는 크레페나 파이도 팔고 있어서 이국적인 시장 분위기와 함께 다양한 간식들을 맛보는 재미도 있었다. 물론 멜버른의 음식 문화는 단순히 정식 식사에만 머물지 않았다. 길거리에서는 푸드트럭이 등장해 멕시칸 타코나 그리스식 수블라키를 팔고 있었고, 예쁜 공원이나 강가에서 그걸 사서 피크닉처럼 즐기는 것도 이 도시에서 흔한 모습이었다. 특히 내가 가장 감동했던 건 ‘루나 파크’ 근처에서 먹은 피쉬 앤 칩스였다. 그냥 흔한 패스트푸드라고 생각하고 먹었는데, 바삭한 튀김 속에 담긴 생선의 고소함과 바다 향이 너무 잘 어우러져서, 단순한 간식 하나에도 이렇게 정성이 들어가 있다는 점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멜버른에서는 디저트도 훌륭했다. 파블로바나 라미링턴 같은 호주식 디저트를 카페에서 맛보는 것도 좋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야시장이나 이벤트 푸드페스티벌에서 맛본 초콜릿 코팅 딸기나 도넛이 더욱 기억에 남는다. 멜버른은 이렇게 ‘음식을 통해 도시를 기억하게 만드는’ 아주 특별한 마법을 가지고 있었다. 하루 세 끼가 아닌 하루 다섯 끼도 부족하다고 느껴질 만큼 다양한 음식 문화가 존재했고, 모든 음식에 담긴 진심과 정성은 여행자로 하여금 이 도시를 또다시 찾고 싶게 만들었다.
꿀팁: 멜버른 여행을 더 알차고 똑똑하게 즐기는 방법
멜버른은 그 자체로 매력적인 도시이지만, 몇 가지 꿀팁을 알고 간다면 훨씬 더 효율적이고 편안한 여행이 된다. 우선 멜버른은 사계절이 뚜렷하고, 하루 안에 네 계절이 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날씨 변화가 크기 때문에 반드시 겉옷을 하나 이상 챙기고 다니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아침과 저녁은 쌀쌀하고, 낮에는 햇살이 강하기 때문에 얇은 긴팔, 반팔, 자켓을 레이어드할 수 있는 복장으로 준비하면 좋다. 여행 최적기는 3월에서 5월, 또는 9월에서 11월로, 날씨가 온화하고 비교적 관광객이 적어 숙소나 관광지 이용도 수월하다. 여름철인 12월~2월은 축제도 많고 해변 활동에는 좋지만, 더위와 인파를 감안해야 한다. 교통은 멜버른 트램 시스템을 활용하면 매우 효율적이다. 특히 도심 내에서는 **프리 트램 존(Free Tram Zone)**이 있어서 무료로 트램을 탈 수 있으며, CBD(중심업무지구) 대부분의 주요 명소가 이 구역 내에 있기 때문에 이 구역을 중심으로 여행을 계획하면 교통비를 절약할 수 있다. 그 외 지역을 이용할 경우에는 **마이키 카드(Myki Card)**라는 교통카드를 사용해야 하며, 충전 방식은 한국의 티머니와 유사하다. 카드 구매는 역이나 편의점에서 가능하고 보증금 포함 약 6호주달러 정도로, 1일권처럼 사용 가능한 요금제도 있어 여행 일정에 맞춰 활용하면 좋다. 공항에서 시내로의 이동은 **스카이버스(SkyBus)**를 이용하면 빠르고 편리하며, 멜버른 터미널까지 약 30분 소요, 요금은 약 20호주달러 내외다. 렌터카는 시내보다는 그레이트 오션 로드 같은 외곽 여행 시 유용한데, 국제운전면허증을 미리 한국에서 준비해야 하며, 하루 렌트 비용은 보험 포함 약 70~100호주달러 수준이고, 기름값은 리터당 약 2호주달러 정도다. 숙소는 도심에 머물 경우 트램 접근성과 치안이 좋아 여행자들에게 편리하고, 외곽은 가격 대비 넓고 조용한 공간이 많아 가족이나 장기 여행자에게 적합하다. 물가는 전체적으로 한국보다 다소 높은 편이므로, 외식 위주보다 슈퍼마켓에서 간단한 요리를 해먹는 것도 여행 예산을 절약하는 좋은 방법이다. 콜스(Coles)나 울워스(Woolworths) 같은 대형마트는 시내 곳곳에 있고, 로컬 마켓에서는 신선한 식재료를 더 저렴하게 구할 수 있다. 환전은 **호주 달러(AUD)**로 하며, 현지 ATM에서 체크카드로 인출하는 것이 환율상 유리한 경우가 많다. 단, 해외 출금 수수료와 카드사 수수료를 확인하고 출국 전 해외 사용 등록은 반드시 해야 한다. 와이파이는 카페, 공항, 숙소에서는 대부분 무료로 제공되지만 시내 공공 와이파이는 속도가 느릴 수 있어 eSIM 또는 유심을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다. 멜버른은 치안이 비교적 안전한 편이지만, 야간에는 외곽이나 인적 드문 골목은 피하고, 소매치기나 가방 도난에 대비해 지퍼가 있는 가방, 크로스백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마지막으로 멜버른은 현금보다는 카드 결제가 일반적이며, 대부분의 장소에서 **비접촉식 결제(Tap)**가 가능하니 해외 결제가 가능한 신용카드를 지참하면 매우 편리하다. 이런 작은 팁들이 쌓이면 여행의 만족도는 두 배가 된다.
결론: 다시 돌아가고 싶은 도시, 멜버른
멜버른이라는 도시는 내게 단순한 여행지가 아니라, 나만의 속도로 숨 쉴 수 있었던 아주 특별한 공간이었다. 시드니가 열정과 에너지의 도시라면, 멜버른은 여유와 감성, 그리고 깊이가 공존하는 도시라고 표현하고 싶다. 도시 곳곳을 걷다 보면 누군가 일부러 연출한 듯한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지는데, 그게 전부 ‘일상’이라는 것이 정말 놀라웠다. 트램이 다니는 거리마다 각기 다른 얼굴을 가진 동네들이 이어지고, 하루의 시작을 향 좋은 커피 한 잔으로 여유롭게 열 수 있는 도시, 아트 갤러리부터 스트리트 아트, 미로 같은 서점과 레코드샵, 그리고 햇살 아래 열리는 플리마켓과 주말 재즈 공연까지. 도시의 모든 리듬이 사람을 재촉하지 않고 ‘그냥 너의 속도대로 걸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듯했다. 그건 여행자에게 얼마나 큰 위로인지 모른다. 나 역시 여행을 하며 항상 뭔가를 놓칠까 급하게 움직였던 스타일이었지만, 멜버른에서는 처음으로 일정을 줄이고 그냥 카페에서 책을 읽거나 트램을 타고 목적 없이 돌아다니는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게 되었다. 그런 순간이 오히려 여행의 핵심을 더 잘 보여주었다. 멜버른은 여행자의 취향을 존중해주는 도시다. 힙한 감성을 좋아하는 사람도, 전통을 좋아하는 사람도, 자연을 좋아하는 사람도, 음식에 진심인 사람도, 모두 이 도시에 자리를 내어준다. 그리고 그런 다양성이 이 도시를 더욱 입체적으로 만든다. 무엇보다도 내가 멜버른을 정말 좋아하게 된 이유는, 이 도시의 사람들 때문이었다. 친절하되 과하지 않고, 예의 바르되 거리감이 없고, 무언가 나를 ‘관광객’이 아니라 ‘한 명의 시민’처럼 대해주는 분위기. 시장에서 만난 과일가게 주인도, 카페에서 커피를 내려주던 바리스타도, 길에서 길을 물었을 때 유쾌하게 도와준 할아버지도 모두 이 도시에 대한 내 기억을 따뜻하게 만든 요소였다.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자연스럽게 다시 멜버른에 갈 이유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때 먹었던 크리미한 라떼, 해질녘 야라강변을 따라 걷던 산책길, 플린더스 스트리트 역 앞에서 한참을 멍하니 바라봤던 사람들의 흐름. 다들 작은 것 같지만, 마음에 강하게 남아 있다. 아마도 언젠가 내가 다시 멜버른에 가게 된다면, 그땐 관광지가 아닌 그때 그 골목의 작은 벤치에 다시 앉아 커피 한 잔 마시고 싶을 것 같다. 멜버른은 그렇게 사람을 다시 불러들이는 도시다. 그리움이라는 이름으로, 여운이라는 감정으로,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